본문 바로가기
성서펴기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by 돌짝 2020. 2. 12.

CHAPTER 1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이 말씀은 창세에 세계가 되었다.

하늘과 땅이 걸렸고, 하늘에는 해와 달, 별들이 걸렸다.

땅 위에 온갖 생물체들이 걸렸고, 바다 밑에도 온갖 생물들이 걸렸다. 

하나 하나들이 세상에 걸렸고, 창조 세계가 되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드러나게 하신 창조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가 되었다. 

세계와 말씀은 다르지 않았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던 것처럼 

세계와 말씀은 어긋남이 없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행동과 다르지 않는다.

 

 

CHAPTER 2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 비트겐슈타인, 철학자

 

세계와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명료하게 말하고

그럴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던 그.

그에게는 모든 것이 참이거나 모든 것이 거짓인 이 두 개만이 논리가 될 수 있었다.

참거짓의 16가지의 경우의 수, 그 가운데 모든 참과 거짓인 두 가지를 뺀 나머지는 

그렇게 과학이 되거나 수학이 되었다. 

 

이렇게 그가 말한 세계는 

말할 수 없는 것과 말 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할 때 드러나는 세상이다.

말 할 수 있는 것은 세계라 부를 수 있었고, 그 외엔 세계 밖의 영역이라 인정했다.

 

독일의 실증과학주의자들의 모임에 초대된 비트겐슈타인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멋진 연주를 한 곡 불러 주었다. 

실증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인정했던 그에게

예술, 종교, 윤리학 등의 가치들은 분명히 세계 밖에 있으나 가치로 존재했다.

 

옥스포드 대학으로 복귀하는 비트겐슈타인을 마중하러 간 거시경제학자 케인즈는 말했다.

"여기 신이 오셨다." 

인간은 알고 있었다. 신이란 세계를 드러내는 존재임을 말이다. 

 

 

CHAPTER 3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과 세계는 , 신의 행동과 역사와 같은 유비이다.

만일 말씀이 A, 세계가 B, 행동이 C, 역사가 D라면

A=C ------------- 1정리가 참이라 할때

A=B and C=D 라는 명제에서

제1정리를 대입하면 

결국 B=D가 된다.

세계는 하나님의 역사(일하심의 결과)가 된다.

 

철학은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세계를 규정했다. 

예수도 말씀에서 역사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빛은 어둠을 비춘다. (요1:4)

하지만 어둠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요1:5)

예수도 세계를 규정할 것이다. 그가 세계를 심판할 것이다.

 

 

CHAHPTER 4

요한복음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세례요한은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다.

헤르메스는 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는 메신저다. 

그가 가르켜 보이게 하는 것은 '빛'이고 

그 빛이 모든 이에게 비췄으나 세상은 알지 못한다.(요1:10)

 

 

CHAPTER 5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설명할 수 없는 세상 밖의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으로 오신 예수는 실재다.

그리고 이 실재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실제가 되었다. 이에 실재는 실제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실재와 실제를 알고 있음을 말한다.

그의 존재를 하찮게 만들지 않으며,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나라이자 세계를 드러나게 하신 말씀임을 아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난 자들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난 것처럼

참과 거짓을 가르는 잣대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계 가운데 거짓을 드러내고, 참으로 회복시킬 것이다.

비틀어진 세계를 구원할 진리로 세상에 대해 의와 불과 심판으로 드러낼 것이다.

 

예수와 부활로 드러나게 될 진리와  빈진리를 구별하게 될 것이다. 

 

 

CHAPTER 6

사실만으로는 세계가 될 수 없다.  

 

 

그림처럼 꾸민 방 - 고흐

 

이곳을 설명한다면 뭐라할까? 눈을 감은 사람에게 이 방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의자 하나, 빨간 선이 한 줄 들어간 핑크빛 수건 하나, 큰 사각 무늬 두 개로 장식된 좁은 방문 하나, 

파란 색의 대야와 물주전자 그리고 책상과 의자 두개... 

그 위치까지 어림잡아 설명하면 겨우 방 하나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명제들의 합들이 정확하게 방을 설명하고 있다면 이것은 참이다.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 고흐

그러면 이제 이 곳을 설명해보자. 하지만 곧 포기하게 될 지 모른다. 나의 설명으로 갯수와 모양들을

위치까지 어림잡아 설명한들 결코 이 그림은 완벽히 설명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구도 이 그림을 그림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넘어 화가의 시선과 인상이 그대로 화폭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인상을 체험한다면 당신도 화가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예수가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1번 그림처럼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은

2번 그림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인이 되었다.

이때 사실만으로도 그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빈소리처럼 요란한 정보들 사이에서 진리의 채움으로 흘러간 사람은 더 있어도 말이다. 

혼란은 뮈토스를 닮았다.  그리고 진리는 세계에 남아 고스란히 세상을 채운다. 

 

세계란 단어가 언어이듯, 사실된 객체만으로는 세계라고 부를 수 없다.

 

 

CHAPTER 7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은 행동하셨다. 세상을 세상되도록 채우시고, 이 아름다움을 인간들도 함께 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빈진리가 진리가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는 걸음들은 더욱 빨라졌다.

사람을 위해 필요했던 돈은, 돈을 벌기위해서라면 사람도 수단화시키는 안타까운 전복사건이 되었다.

아름답게 그리신 하나님의 세계 조차 그의 영감을 지우고, 그의 계획을 지우더니 

GPS와 같은 사실들만이 남기 시작했다.

이들은 빈 세상에 살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고, 유신론자처럼 신념하지만, 무신론자로 살아간다. 

존재를 존재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매우 인간적인 유신론적 고백에도 

저들은 동의할 수 없어 매우 인색하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실은 세계가 아닌 방에서 살기 때문은 아닐까? 

 

세계 - 공동체 - 개체(Individual) - 별개(Dividual) ...  Cell

 

"철학의 목적은 병에 갇힌 파리에게 그곳에서 나오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